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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발달장애인법. 어떤 내용으로 채워야하나?(비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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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5-17 14:43 조회6,8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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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발달장애인법. 어떤 내용으로 채워야하나?
다양한 서비스 제공 위해 예산 확보 전제되어야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해 대상 확대해야
2012.05.15 15:42 입력 | 2012.05.15 22: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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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장애인위원회 구교현 활동가.

최근 장애인계 언론에선 오는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이 장애관련 법률로 발달장애인법을 가장 먼저 처리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일단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그동안 발달장애자녀를 두고 있는 부모들과 발달장애인과 관계를 맺고 있는 많은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체계가 부실함을 안타까워하며 법률적 권리로 발달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라고 요구해왔다.

 

그동안 이어진 숱한 투쟁과 호소의 결과,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발달장애인의 문제에 대해 복지부가 대책 논의를 시작했고, 급기야 원내 1당에서 이를 처리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며 법 제정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를 마냥 반기고만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간 새누리당은 장애인문제 전반에 대해 별다르게 진전된 태도를 보인 바 없고, 오히려 이명박-새누리당 정부에서는 장애등급재심사 등 복지체계를 후퇴시키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상황은 그간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갈망했던 모든 사람이 발달장애인법의 제정을 넘어 법의 내용이 어떻게 채워져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발언할 때이다. 이에 아래에서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토대로 발달장애인법이 어떠한 방향에 근거해야 하는지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발달장애인법은 충분한 예산 확보가 전제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장애관련 법률들이 상당수 제정됐음에도 장애인의 현실이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각 법률을 제대로 실행할 예산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법이 있어도 예산이 없어서 특수교사를 못 늘리고, 예산이 없어 활동지원서비스를 못 늘리고, 예산이 없어 장애인연금 단돈 만 원도 못 올리고, 예산이 없어 정당한 편의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발달장애인법에 있어서도 예산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법이 또 하나 탄생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발달장애인법에서는 기본적으로 발달장애인 1인당 충분한 소득보장(발달장애인들이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상황임을 고려할 때 이 소득보장의 수준은 최저임금 - 작년 기준으로 월 95만 원 수준 - 이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발달장애와 관련한 별도의 서비스제공자, 고용·주거·건강·Day서비스 등의 다양한 서비스 등이 규정될 것이며, 이를 충분히 제공하기 위한 예산 확보가 전제되어야 한다.

 

발달장애인을 대략 20만 명으로 추정하고 이들에게 최저임금 수준의 월 소득을 보장한다고 가정하면 대략 2조3천억 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다. 이렇게 주장하면 많은 사람이 놀라자빠질 수도 있다. 장애자녀 부모들 조차 ‘택도 없는 소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장애인복지예산 수준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OECD 평균 정도만 따라가려 해도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예산은 현재보다 3.5배 정도가 늘어나야 하며, 이 경우 예산총액은 약 20조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발달장애인이 전체장애인의 10% 정도(지적·자폐인이 8%가량, 정신적 장애를 동반한 중증뇌병변장애인 등을 포함할 경우 대략 10%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라고 볼 때, 2조 원 정도의 예산을 발달장애인에게 편성하라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주장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새누리당은 지난 총선에서 장애인복지예산과 관련한 그 어떤 약속도 한 바 없다. 더군다나 부자증세 등 조세제도를 바꿔야 가능한 전체 복지예산 확대에는 오히려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결국 새누리당으로 하여금 발달장애인법에 필요한 예산을 편성하도록 하기 위해선 적극적인 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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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법 제정과 더불어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등 후진적 복지환경이 함께 변화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장애등급제가 문제투성이라는 사실은 장애인계의 대부분 사람이 공감하는 상황이다. 특히 발달장애인은 장애등급제의 최대 피해자이다.

 

인간의 정신적 능력이란 인간생활의 다양한 요인에 의해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영역이며, 아무리 의학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복잡한 인간의 두뇌 활동에 대해 전반적으로 비교 가능한 기준을 설정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발달장애인의 등급은 학습능력 정도를 추정할 수 있는 지능지수(IQ)와 검사자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소지가 큰 사회성숙도 등의 검사를 통해 이를 기계적으로 환산한 점수로 결정하고 있다. 결국 발달장애인에게 있어 등급을 나누는 것은 행정적 관리의 용이함 이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국 장애등급제가 폐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달장애인법이 시행될 경우, IQ 1점 차이로 활동지원서비스를 못 받는 사태, IQ 1점 차이로 연금을 못 받는 사태가 초래한다. 또한 어제까진 영 상태가 안 좋다가 등급을 검사받는 당일 갑자기 상태가 좋아져 등급이 떨어지고 이에 따라 서비스도 못 받는 사태, 마음씨 좋은 의사를 만났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사회적 생존과 직결되는) 서비스 수급 여부가 결정되는 사태가 여전히 계속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이번 총선에서 모든 야당이 장애등급제의 개선 또는 폐지를 공약했으나,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새누리당은 장애등급제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상황이다.

 

향후 새누리당의 장애 관련 정책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김정록 당선자가, 장애등급심사가 한창 문제가 되었을 때 장애등급심사 명예 센터장을 맡은 바가 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에 대한 새누리당의 인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새누리당으로 하여금 장애등급제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게 하지 못한다면 새누리당표 발달장애인법은 ‘1급만을 위한 발달장애인법’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편, 현재 발달장애인과 관련해 아무런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장애자녀 부모들은 자녀의 부양에 등골이 휘는 실정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모든 복지제도에 적용되고 있는 부양의무제로 말미암아 부모들은 자녀의 부양을 떠안고 있는 것과 동시에, 자녀가 받을 수 있는 복지서비스마저 가로막는 ‘원죄’까지 저지르고 있다.(부모가 이 사회에서 사라지고 장애자녀가 혼자 남게 되면 생활시설에서 발달장애인을 '관리'하게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정치권이 복지공약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새누리당은 기초법의 부양의무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그 이후에는 감감무소식인 상태다.

 

따라서 부양의무제 폐지 또한 새누리당을 상대로 열심히 투쟁해야 실현 가능한 문제이다. 이 같은 부양의무제가 폐지되지 않고서는 새누리당표 발달장애인법은 ‘부양의무자 없는 발달장애인만을 위한 법’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발달장애인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상태에서 장애등급제나 부양의무제를 당장에 폐지하기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발달장애인법에서는 해당 기준과 무관하게 시행하도록 법에 규정하고 점차 장애등급제나 부양의무제가 적용되지 않은 장애인복지서비스를 확대해 나가는 것도 가능한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도 장애등급제나 부양의무제가 적용되지 않는 장애인복지서비스는 일정 정도 존재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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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당사자들의 참여가 중요하다.

 

발달장애인법 제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바람을 우리 사회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특히 발달장애인들은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손상 등으로 말미암아 자기 판단과 주장을 펼치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발달장애인의 의사는 대부분 부모나 주변 관련자들이 대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한국의 입시위주의 교육환경은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자기주도성을 계발해나가는 데 있어 상당한 제약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대안적인 당사자들의 자조모임들은 이제 막 시작되는 실정에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더 많은 발달장애인당사자와의 소통을 통해 법률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복잡한 개념의 이해와 다양한 판단이 요구되는 법률 논의에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을 기계적으로 참여시킨다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현재 이 같은 문제의식 반영한다면, 제도를 설계하는 데 있어 발달장애인에 대한 권리를 보편적인 수준에서 규정하고, 실제 운영에 있어선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다양한 체계를 구성하는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다.

 

당사자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선 당사자와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다양한 협력자들이 필요하며, 이 협력자들과의 집단적인 결정을 정기적으로 평가받는 체계가 필요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체계의 구성은 의사결정에 따른 비용과 시간이 소모되고,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당사자의 의견을 억압할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개별 상황에서 다양하게 구성되어야 할 문제이며, 오랜 기간 수정보완을 거치며 완성해나가야 할 하나의 과정이기도 하다. 문제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필요와 행복을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설정하고 시간과 비용과 노력을 투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제 확실히 발달장애인의 문제는 장애인계의 주요 이슈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 이 이슈를 주도할 분명한 세력도 존재하는 상태다. 2012년이 더 적극적인 요구, 적극적인 투쟁을 통해 우리 사회 발달장애인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꿔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진보신당 또한 작은 힘이지만 제대로 된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관심과 연대를 충실히 할 것이다.



구교현 (진보신당 장애인위원회) 12dypro@hanmail.net